30대 후반의 가장 월트 디즈니는 휴일이면 딸들을 데리고 공원에 놀러 가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자주 가던 동네 공원에서 딸들이 뛰어 노는 모습을 보고 그는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공원이 너무 불결하고 위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불평만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눈을 감은 그의 앞에는 깨끗하면서도 자연과 과학이 잘 조화를 이룬 멋진 공원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며 이렇게 외칩니다.
“맞아, 내가 그런 공원을 만들어야지”
그 후 꼭 15년이 지난 후 그의 꿈은 실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LA근교에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본격적인 테마공원을 개장했을 때 그의 나이는 53세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디즈니랜드 주변 환경이 공원과 맞지 않게 개발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좀 더 자연 친화적이고 좀 더 미래적 과학정신을 반영하는 인류 최대의 어린이 낙원인 꿈 동산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디즈니랜드가 160에이커였는데 그보다 175배 더 큰 28,000에이커(3,500만평)의 땅을 플로리다 주 올랜드 근교에서 구입하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평생의 비전실현을 위한 마지막 프로젝트인 디즈니 월드 건설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의 프로젝트가 실현되기 약 5년 전 인 1966년 12월 15일 월트디즈니씨는 만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디즈니 개장식 행사에는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참여하여 축사를 했습니다. 그 중의 한 분이 “오늘 월트디즈니 씨가 이 자리에 계셔서 이 디즈니 월드가 오픈 되는 것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섭섭함을 멘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잠시 후 미망인이 소개된 후 미망인을 대신하여 인사하게 된 영화감독 마이크 밴스(Mike Vance)가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조금 전에 인사하신 분이 디즈니씨가 오늘 이 공원이 개장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제가 진실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그분은 오늘 이 디즈니 월드가 개장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분이 보았기 때문에 우리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루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전 3세기경에 그리스 북부 에피로스(Epirus)를 다스렸던 피루스(Pyrrhus, 주전 306-272년 통치)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제2의 알렉산더가 되고 싶었던 피루스 왕은 주전 279년에 2만5000여 명의 군인과 20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헤라클레이와 아스클룸에서 격렬한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둡니다. 두 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전투에서 코끼리도 모두 죽고, 군인들도 4분의 3이나 죽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이라곤 얼마 되지 않는 상처투성이인 군인들과 지칠대로 지쳐버린 무기력한 군인들뿐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남은 것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피루스 왕은 이렇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이런 전투에서 한 번만 더 승리를 거두었다가는 우리가 망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서 ‘피루스의 승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를 ‘피루스의 승리’라고 합니다.
여자 - 돈, 건강, 딸, 친구, 개.
남자 - 애엄마, 아내, 집사람, 처, 마누라
미국의 한 지역 신문에 실린 ‘비참하게 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칼럼
언제나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라. 어떤 사람을 만나든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라.
모든 것을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되도록 자주 ‘나’라는 말을 사용하라.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말라.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라.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말라.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면 시기하고 질투하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로 듣지 마라. 남들을 믿지 말고 너 자신을 믿어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나’만 알고 있으라. 모든 일에 당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게 하라.
남에게 칭찬받기를 즐겨라.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더욱 하지 말라.
당신 자신을 제일 사랑하라. 철저히 이기주의자가 되어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전선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가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에 진급예정자 명단을 살펴보고 있을 때, 이 명단에 포함된 한 장교가 아이젠하워를 찾아와 “저는 장군이 될 수 있는 모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진급시켜주십시오”라고 당당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 요청에 대한 아이젠하워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자네 말이 맞네, 자네는 누구도 갖지 못한 놀라운 능력을 갖추었지,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일세. 왜냐하면 병사들은 자네만큼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야. 우리에겐 그런 부족한 병사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장군이 필요하네, 자넨 진급이 어렵겠어”
1979년 11월 4일,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의 외교관과 민간인 63명이 444일간 억류 구금되는 인질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미국 행정부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특공대를 파견했지만 실패하고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레이건 대통령이 이란과 협상을 하여 해방시켰는데 당시 억류되었던 여인 쿠브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처음 5개월 동안은 지옥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네가 하나님 편에 서 있으면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너를 도와주실 것이다.’ 5개월 후 저는 스위흐트 양과 함께 있도록 허락되었는데, 우리는 함께 신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용기를 내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감옥 생활은 지옥이 아니라, 믿음을 더욱 크게 하여 저의 일생을 바꾸는 천국이 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가 하운슬로 히드라는 영국의 산악지방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웨슬레는 주로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길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웨슬레에게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습니다.
“꼼짝 말고 손들엇. 가진 것을 모두 내 놓아라”
강도는 웨슬레의 짐 보따리를 모두 뒤졌습니다. 그러나 책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강도는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습니다.
“오늘은 참 재수가 없군”
그때 웨슬레가 강도를 불러 세웠습니다.
“당신에게 선물을 하나 주겠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당신과 내 죄를 정결케 해준다는 사실이오. 그것을 믿으시오.”
강도는 말없이 돌아갔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웨슬레가 집회를 인도하는데 한 중년신사가 꾸벅 절을 했습니다. 그는 10년 전의 강도였습니다. 웨슬레가 던진 메시지에 감동을 받아 독실한 신자가 된 것입니다.
어떤 강도가 돈을 훔치려고 어느 할아버지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는데 방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연세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화투를 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밖에 있는 강도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할아버지가 그러는 것입니다.
“빨리 먹어!”
그러니까 할머니가 “먹을 게 없어요.”
“아, 그렇게도 없어? 빨리 먹어!”
“먹을 게 없다니까요.”
“아, 그러지 말고 빨리 먹어봐.”
그러니까 “똥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그럼, 똥이라도 먹어. 빨리 먹어!”
그러니까 “아이고 똥밖에 없네.” 그러고 딱 치고 먹는데, 밖에 있는 강도가 생각하기를 ‘세상에 이렇게 가난한 집이 어디 있나?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똥밖에 없다니 이럴 수가!’ 하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 유원미길(有原末吉)이 쓴 「교훈예화사전」에 이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큰 부자 상인의 건물에 한 가난한 신발 수선공이 세를 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은 부자는 언제나 많은 돈을 세고 살면서 밤이면 재산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두 수선공은 아주 가난해도 무엇이 즐거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래를 부르며 삽니다.
부자는 은근히 부화가 치밉니다. 그래서 친구의 충고에 따라 구두 수선공에게 제법 큰돈을 주었습니다. 구두 수선공은 그것을 받고 나서 근심에 싸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누구한테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보면 누구나 훔치려고 할거야. 아내한테도 비밀로 해야지.'
돈이 많아진 다음 수선공은 사람들을 피합니다. 아내조차도 보기 싫습니다. 오직 돈에만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러니 일에도 재미가 없고 옛날처럼 노래도 부를 수가 없습니다. 아내가 "당신은 왜 갑자기 변했습니까?"라고 계속 따지자 수선공은 할 수 없이 실토를 했습니다. 아내는 울면서 "우리는 그 돈이 있기 전에는 행복했습니다. 공짜로 생긴 그 돈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즉시 그 돈을 돌려주세요. 그러면 다시 행복해질 것입니다."라고 호소합니다.
구두 수선공은 큰 결심을 하고 그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구두 수선공의 노랫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답니다.
켄 가이어가 쓴 ‘묵상하는 삶’에 보면 멕시코시티의 ‘양파 파는 노인’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멕시코시티 시장 한 구석에서 ‘포타라모’라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 노인이 양파 스무 줄을 걸어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시카고에 온 미국인 한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입니까?
"10센트입니다."
"두 줄은 얼마입니까?"
"20센트입니다."
"세 줄은 얼마입니까?"
"30센트입니다."
"깍아 주시는 것이 없으시군요. 그러면 스무 줄을 다 살터이니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렇게 팔 수는 없습니다."
"아니, 왜 못 파십니까? 양파 팔러 나오신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양파를 팔뿐 아니라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여기 나온 것입니다. 난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여기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햇빛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건네는 것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하고 농작물 이야기하는 것을 사랑한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 한꺼번에 몽땅 팔면 나는 내 인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암페르는 전자기학의 기본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과학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고 손님들 때문에 암페르는 도통 연구에 집중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돌려보낼 수 있을까?’고심하던 암페르는 ‘금일부재중’이라는 팻말을 만들어 현관문에 걸어놓았습니다. 연구하고 있을 때는 항상 이 팻말을 걸어놓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연구에 몰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암페르가 그렇게 한창 연구를 하던 중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머리를 식히려고 잠시 산책을 나왔습니다. 그는 산책을 나와서도 계속해서 풀이방법을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한 암페르는 자신이 붙여놓은 ‘금일부재중’이란 팻말을 보고는 말했습니다.
“오늘은 집에 없다는 말인가? 다음에 다시 와야겠군.”
너무 문제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집인지도 모른 채 ‘금일부재중’이라는 팻말만 보고는 다시 산책을 나섰던 것입니다.
이 정도로 연구에 집중하던 암페르는 마침내 ‘오른나사의 법칙’이라는 것을 발견해 전자기학사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고 있다면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기도의 영을 받는 법」의 저자 토레이 목사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그가 음식점에서 만난 여종업원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토레이 목사는 회개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약 2주 정도 지난 후에 토레이 목사가 다시 그 식당에 들렀을 때 여종업원은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리 회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도 회개할 수 없었고 예수님도 믿어지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토레이 목사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이제 회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토레이 목사의 충고를 듣고 여종업원은 자기의 모습을 보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이 기도의 응답으로 자기의 위험한 영혼 상태를 보게 되었고 그러자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1993년 454명이 살해됨으로써 ‘미국의 살해수도’라고 불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6년 후 워싱턴의 범죄율은 폭력 범죄율이 60%까지 떨어졌고, 1993년 454명이던 피살자수가 232명으로 줄었습니다. 강도는 70%나 감소되었고 강간도 40%나 줄었습니다.
이는 미국에서 일어난 기도운동 ‘미국을 위한 중보자들’과 전 세계의 지속적인 중보기도가 있었던 덕분입니다.
정부와 도시 지도자들은 위해 기도하는 이 기도 운동은 1997년 연중무휴로 지속되었습니다. 6천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매주 최근의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전화번호부를 이용하여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기도 명단에 올려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당신이 오늘 아침 건강하게 일어났다면 지난 주 죽은 1백만 명을 기억하라.
당신에게 배고픔이 없다면 이 세상 5억 명이 배고픔 속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비를 피하고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75%보다 더 낫다는 것을 기억하라.
은행이나 지갑에 약간의 돈이 남아 있고, 접시에 동전을 모아둔다면 세상에서 8% 안에 드는 부자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세상에 20억 문맹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큰 사람이 되게 하소서' - 메리 스튜어트의 시
오, 하나님! 모든 하찮은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소서.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우리가 큰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남의 흠 잡는 일을 그만두게 하소서.
모든 이기심을 말끔히 떨쳐 버리게 하소서.
모든 겉치레를 벗어 버리고 자기 연민과 편견 없이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게 하소서.
남을 판단하는 일에 결코 성급하지 않고 항상 관대하게 하소서.
매사에 시간의 공을 들이게 하시며 늘 차분하고 평온하며 온유하게 하소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좋은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늘 올바르고 두려움 없이 살게 하소서.
사람들 사이에 차이점을 만드는 것이 실상은 삶의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라는 것을, 사람의 커다란 것들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오, 주 하나님! 우리가 남에게 친절하기를 잊지 않게 하소서.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병원 원목으로 봉사하던 패트 노박(Pat Novak)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여름, 병명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으로 입원한 어느 환자가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존이라는 60대 남자였는데 어떤 검사를 해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날로 쇠약해졌으며, 2주일 동안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습니다. 의료진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원목을 찾게 되었습니다. 패트 목사는 존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시키려 하심을 느꼈습니다. 존에게 ‘성찬을 받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패트 목사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순간 존이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습니다.
“성찬을 받을 수 없어요! 죄를 많이 지어서 안 됩니다.”
그러자 패트 목사는 성찬을 통해 죄사함의 은혜가 임할 것을 알려주며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존은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존은 회개하면서 흐느꼈습니다. 패트 목사가 그를 껴안으며 죄 사함 받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존은 떡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받아 마셨습니다. 그는 영혼과 육신이 자유로워졌습니다. 3일 만에 병원을 자기 발로 걸어서 나가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전 대륙이 2차 세계대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불길 속에 쌓여 있을 때, 안일하고 태평스러운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난데없이 재빠른 비행기의 편대가 나타났습니다.
상공을 배회하며 누비던 비행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얀 삐라를 하늘에 날리고, 수평선 넘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온 시민들은 갑자기 뿌려진 삐라를 들고 우왕좌왕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인즉 조그만 종이쪽지는 미국공군에 의한 것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경고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시민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00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시민들은 영문 모를 경고장에 대하여 각기 나름대로 가슴을 조여 가며 수근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공갈이다”, “거짓말일 게다”
어떤 이는 “그 때가 봐야 되지 않느냐” 는 등 무서운 경고를 받고도 꼼짝달싹 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소수의 무리만 이 급히 가산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정든 히로시마를 눈물과 함께 작별하고 50리 밖으로 도피했습니다.
그 후 경고대로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1945년 8월 6일 아침, 시민들은 과연 오늘 하루 동안에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의문을 마음에 품고 초조와 긴장의 도가니 속에 휩싸여 어서 빨리 그 시간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랬습니다. 그 때 서쪽 하늘에서 소리 없이 빠르게 다가오는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온 시민들은 엄습해 오는 두려움으로 자포자기와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고, 이 곳 저 곳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울부짖음과 죽음에 대 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은 이미 막혔으며, 피할 기회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다가온 비행기는 상공을 두어 번 배회하더니 시커먼 하나의 물체를 떨어뜨렸습니다.
순간 폭음과 함께 시커먼 죽음의 구름은 온통 시가지를 흔들고 뒤엎어 버렸습니다. 마지막 시간까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불신의 대가는 순식간에 히로시마 시민 30여만 명의 생명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원자탄의 위력을 잘 알지는 못했으나 삐라에 쓰인 경고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소수의 무리들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의 증인으로 살아있습니다.
펜실바니아주의 한 댐을 조사한 기술자들은 인근 주민들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이 위에 있는 저수댐은 안전치가 않으니 이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을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 해 가을에 조사단이 와서 다시 경고를 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우리에게 겁을 먹도록 할 수는 없지...”
그러나 마지막 경고가 있은 지 보름이 못 되는 1889년 5월 31일 그 댐은 홍수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댐의 붕괴로 존스타운 주민 중 2,200명이 삽시간에 몰사했으니, 미국 역사상 대홍수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남아공화국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성 시온 흑인 교회에서 성찬과 세족식(洗足式)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세족 대상자는 마르타 포트윈’(Martha Fortuin)이라는 늙은 흑인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 판사의 집에서 평생 하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목사가 올리버 판사를 만나 마르타의 발을 씻겨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올리버는 대법원장 서리직을 수행하는 유력한 차기 대법원장 후보였습니다. 물론 백인이었습니다. 고민하던 올리버 판사는 자신의 참여를 비밀로 할 것을 전제로 승낙하였습니다. 세족식이 거행되던 날 마르타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교회 구석에 앉아있던 올리버 판사가 등장하였습니다. 마르타도 교인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올리버 판사가 천천히 마르타의 발을 씻겨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흑인 교인들은 백인 판사 올리버가 흑인 하녀 마르타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발 씻기를 마친 올리버가 입을 열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마르타가 우리 아이들을 목욕시키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르타는 우리 아이들 목욕을 다 시키고 난 다음에 예쁘다고 하면서 꼭 아이들 발에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고마운 마르타입니다. 지금 그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마르타의 양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흑인 교인들이 흐느꼈습니다.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올리버 판사는 백인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판사직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올리버는 판사직도 대법원장직도 모두 잃었지만 흑인들의 가슴에 못 박혀 있던 백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누그러뜨리고 백인들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줌으로 흑백갈등 해소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성 시온교회 목사가 올리버 판사를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하였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사직도, 사회의 다른 지위도 무덤에 갈 때는 먼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먼지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는 미국 밴더빌트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1972년 조국 방글라데시로 돌아왔습니다. 그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직접 찾아다니다가 조부라 마을에서 대나무 의자를 만드는 여성 수피야 베굼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일했지만 사채업자의 고금리로 인해 겨우 이자를 갚고 남은 2센트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고국의 빈곤 문제를 일으키는 사회적 환경을 4년 동안 집요하게 연구하여 그라민 은행을 설립했습니다.
그라민 은행은 작게 시작했지만 방글라데시에 혁명적인 변화를 주었습니다. 30년 동안 대부분 가난한 여성이었던 250만 명에게 돈을 빌려 주어 자립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포루투갈의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는 요한 3세 국왕의 위촉으로 인도, 중국, 일본까지 다니며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1552년 선교지에서 숨을 거두며 국왕에게 유서를 남겼습니다.
"폐하도 어느 날인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날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 날을 위하여 더욱 양심적인 국왕이 되십시오.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겸손한 왕이 되십시오. 그리고 부끄러움 없는 결산의 날을 위해 준비하십시오."
록펠러(John Rockefeller)는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청년 시절부터 자신을 위하여 돈 버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다 30대에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합니다.
40대에는 철도회사와 기업을 병합하여 미국 정유 능력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큰 부자가 됩니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착취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공해도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록펠러 역시 남을 위해 희생하는 기쁨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50세가 넘어 심한 노이로제에 걸리게 됩니다. 전혀 식욕이 없게 되어 날마다 우유 한 잔, 크래커 몇 조각으로 연명하며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저주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던 목표가 잘못된 길이었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 보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가 사랑해야 될 사람들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며 목숨을 걸었던 물질도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 이후 자선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을 만들고 대학을 세우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물질만을 위해 살았던 삶이 실로 어리석은 삶이었음을 철저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John Calvin)은 물질에 대해 ‘거울 앞에 서는 사람’ 과 ‘창문 앞에 서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거울 앞에 서면 자기 밖에 안 보입니다. 물질을 가지고 자신만을 치장하고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씁니다. 하지만 창문 앞에 서면 창문 너머로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보이고, 자신이 돌봐야 할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보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에서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하는 사람들은 보통 7가지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세 번째 습관은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있고 그 우선순위에 입각하여 시간 관리를 잘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스티븐 코비는 말하기를 세상에는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중에 주로 급한 일을 먼저 한다는 지적합니다. 하지만 성공하려면 ‘급한 일’이 아닌 ‘중요한 일,’ ‘소중한 일’부터 먼저 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상근 목사님이 16살 때였습니다. 발에 병이 나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구 달성 공원 느티나무에서 40일 동안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병은 낫지를 않고 더 심해졌습니다.
3년 동안 출입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다닌 나이인데 움직일 수 없으니까 공부도 포기하여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한약을 붙인 것이 덧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에만 틀어 박혀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꼼짝 못 하고 앉아서 성경을 거의 다 외웠습니다. 성경박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는 드문 주석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 60년 동안 발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그가 은퇴하면서 존경하는 어느 외과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으면서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발 뒤꿈치에서 1cm 가량 되는 머리카락 굵기의 철사가 나온 것입니다. 어렸을 때 맨발로 다니다가 철사에 찔린 것이 속에 들어가서 그의 평생 가시가 된 것입니다. 그것을 거의 60년 만에 발견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그 철사를 깊이 보관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늘 이렇게 자랑삼아 회고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가시를 보십시오. 내 발꿈치에 60 년 동안 박혀 있던 가시입니다. 이 철사가 나의 가시가 되어 60년 동안 나를 찔렀습니다. 내가 대성서 학자가 되게 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였습니다. 이 가시가 아니면 나는 주석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잘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일찍 발견하여 수술하였더라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영국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플래쳐를 단장으로 하여 바운티(Bounty)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남태평양의 피트건 섬으로 가서 원주민과 함께 공동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9년이 지난 뒤에 공동사회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12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폭력, 성도덕의 문란, 알콜 중독 등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 일로 지도자 플래쳐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낙심한 존 아담스 역시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정리하다가 성경책을 발견했습니다. 9년 동안 한번도 읽지 않고 처박아 두었던 성경이었습니다. 아담스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며 두 달 동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가운데 죄를 뉘우치고 예수를 만났습니다.
아담스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피트건 섬의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 후 피트건 섬은 새로운 세계가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이 변한 것입니다. 영국인들의 영향으로 불과 9년 만에 술 주정꾼이 되고 폭행자와 성적 문란자가 되었으나 존 아담스가 다시 찾은 성경으로 말미암아 섬 전체가 새롭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토록 엄청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여 그 말씀 안에 거할 때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됩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 에 나오는 글이다.
‘홀스또메르’ 라는 연극을 지하 소극장에서 보고 나오는 날이었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지하통로의 계단을 올라오는 일은 무척 힘이 들었다.
그 순간 연극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던 배우 유인촌 씨가 장애를 가진 내가 층계를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펄쩍 뛰며 사양하는 나를 들쳐 업고 층계를 올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밖에까지 데려다 주었던 그의 행동은 한 번 베풀어지는 행동이 아니라 몸에 밴 행동이었다.
장애인들은 ‘당신은 할 수 있소!’ ‘하면 된다!’ 라고 외치는 백 마디의 말보다 사소하지만 몸에 밴 행동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사랑에서 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말보다 행동, 이론보다 실천이 감동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어쩌다 한 번 치기어린 행동으로 보여 지는 사랑보다 몸에 밴 습관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사랑이 더 큰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미국에 바비 힐(Bobby Hill)이라는 이름을 가진 13세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미 공군 상사로서 유럽에 파견되어 근무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비 힐은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의약품이 부족하여 곤란을 겪고 있다는 글을 잡지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그 글을 읽고 유럽 지역의 미 공군 사령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제가 산 아스피린 한 병을 보냅니다. 이 약을 아프리카에 계신 슈바이처 박사님의 병원에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한 생각이었지만 그러나 너무나 아름답고 고귀한 생각이었습니다.
사령관은 이 소년의 이야기를 유럽의 각 방송국에 전해 주었고 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간 후에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 의약품을 모으는 운동이 시작되어 무려 40만 달러 어치의 의약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바비 힐이라는 소년은 40만 달러 어치의 의약품을 가지고 비행기로 슈바이처 박사에게 의약품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슈바이처 박사는 이 일을 기억하며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이런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비록 작은 어린아이의 헌신이었지만 이 일이 아프리카 선교의 가장 큰 일을 이루게 했다.”
작은 것일지라도 내 손에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리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다 알아서 하십니다. 주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것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한 여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시장에 가서 새로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게 주인은 다름 아닌 신(神)이었습니다. 이 가게에서 무엇을 파느냐고 묻자 신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팝니다.”
놀란 여인은 한참 생각 끝에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과 지혜와 행복, 그리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그러자 신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이 가게에서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만을 팔지요.”
2차 세계 대전이 점점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한 움직임이 독일 내부에서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 일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홀로센버그 수용소를 담당했던 독일의 군의관 베스게는 1945년 4월 9일,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많은 독일의 장군들이 히틀러에 의해서 사형을 당했다. 오늘 새벽 5시와 6시 사이에도 여러 명의 사람이 처형되었다. 그 중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바로 본 회퍼 목사였다. 본 회퍼 목사도 히틀러 제거 운동에 관여했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을 받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가 처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교수대에 올라가서도 잠시 기도했다. 오랫동안 사형수를 돌보는 의사였던 나에게 죽음 앞에 선 그의 평안함과 넘치는 기쁨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니, 나는 지난 50년 동안 의사 일을 하면서 저런 죽음을 본 적이 없다. 저렇게 평안하고, 저렇게 기쁘고, 저렇게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본 회퍼 목사가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이며, 자신도 그와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분명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종교다.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기는커녕 기뻐하며 그들의 신에게 감사의 예식을 드린다. 그들은 장례를 지내기 위해 묘지로 갈 때에도 마치 가벼운 소풍이나 가듯 노래를 부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행진한다."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만나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자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말합니다.
“얘, 이젠 저녁이 되었다.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또 놀자”
“메뚜기야, 내일이 뭐니? 오늘이 마지막인데 어떻게 또 놀 수가 있어?”
메뚜기는 잠시 후면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모든 동물이 다 잠을 자게 되는데 잠자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내일이 온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내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메뚜기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일이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루살이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살이가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불쌍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에 남루한 옷을 입고 충혈 된 눈으로 찾아온 한 알코올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틈을 타 죽은 아이의 신발을 벗겼습니다. 그걸 팔아 술을 마신 그 사람은 바로 죽은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20년 후, 시카고 제일장로교회에서는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한 사람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죽은 딸의 장례식에서 신발을 훔쳤던 파렴치범은 바로 저였습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나를 다시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바로 시카고의 부흥사 멜 트라더 목사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못 고칠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양실에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목사님께서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 건 여성은 “여보세요? 여기 참이슬 소주 2병하고, 족발 배달해 주세요”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전화속의 목소리가 자기 교회의 교인의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저는 성도님 다니시는 교회 목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성도님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지금 술집에서 뭐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술집으로 전화한다는 것을 교회로 잘못 건 것을 모르고, 목사님이 술집에서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 55분 6척의 항공모함에서 출발한 일본 공군기 353대가 벌떼같이 하와이 진주만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미국 해군 기지를 공격해서 21척의 군함을 침몰시키고 117대의 항공기를 파괴하고, 2,003명의 사상자를 내고 960명의 실종자와 1,100의 부상자를 냈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이것이 태평양 전쟁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실이 한 사람의 무관심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진주만 기습 55분 전, 정확하게 오전 7시에 태평양에 있는 미군 레이더기지에서 두 명의 병사가 스크린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레이더에 이상한 점이 점점 많아지더니 스크린을 꽉 채운 것입니다. 그 순간 깜짝 놀라서 중위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위는 “걱정 마라, 우리 편 비행기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55분 후에 폭탄이 떨어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무관심으로 엄청난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리챠드 범브란트라는 루마니아 루터교회의 목사님은 1948년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무려 14년 동안 감방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마지막 3년은 어느 누구와도 만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독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이 목사님은 신앙을 굽히지 않으셨지만 그 분이 옥중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절망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절망을 이기기 위해 말씀을 읽으면서 특별히 성경 속에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몇 개나 있는지 세어보게 되었습니다. 세어보니 놀랍게도 365개나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일 년 365일 동안 매일 같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 힘 주시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염려는 느린 형태의 자살이다.
염려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의사인 W. C. 알바레즈는 위장 장애의 80%는 염려와 두려움에서 온다고 했다. 염려와 두려움이 심해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또한 위장병을 발생시킨다.
염려는 영어로 ‘워리’(worry)인데 이 말은 독일어 ‘위르겐’(wyrgan)에서 유래되었다. 워르겐이란 ‘목을 졸라 죽인다’는 의미이다.
염려는 우리의 목을 조이며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염려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
*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이제 염려의 수렁에서 머물지 말고, 우리 주님께 맡기고 자유하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
어떤 사람이 지하철에 탔습니다. 오전 시간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운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맞은편에는 한 앳된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들인 듯한 어린 남자 아이 하나가 연신 괴성을 지르며 이리저리를 뛰어 다니는 것입니다.
그 엄마는 아이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승객들은 짜증스런 표정이 역력했고 사람들은 서서히 그 엄마에게 눈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참다못한 한 사람이 아이의 엄마에게 다가가 아이를 왜 그냥 내버려 두느냐고 질타했습니다.
그때 그 옆에 앉아 있던 한 중년의 남자가 말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아이는 제 딸이고, 저기 뛰어다니는 남자 아이는 제 손자입니다. 제 딸애 남편이 갑작스런 교통사로로 세상을 떠나 오늘 아침 장례를 치루고 오는 길입니다. 제 딸애가 밤새 조문객을 맞이하느라 한숨도 못 자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 아이는 자기 아빠가 죽은 것도 모르고 뛰어 놀고 있습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순간 짜증스런 표정을 짓던 승객들의 표정이 모두 180도 바뀌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니던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몰상식한 엄마에 대한 미움과 비난이 일순간 따스한 포용과 긍휼의 마음으로 변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뛰어다니는 아이는 그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런 아이를 모두가 이해한다는 듯 따뜻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왜 우리를 위로하러 온 사람들이 도리어 상처를 줄까요? 그것은 먼저 우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걸음걸이를 나무라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거세게 비판했던 일도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우리가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 우리도 그렇게 했을 것이며, 어쩌면 우리는 그 보다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난의 화살을 접고 먼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인도 지역은 목재 수출로 유명합니다.
고무, 커피, 건축 자재용을 비롯한 다양한 쓰임새의 유용한 나무들이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런 나무들 가운데 만차닐이라는 아름다운 나무가 있습니다.
외형이 매우 아름다운 이 나무는 사과와 비슷한 열매를 맺습니다. 향기도 좋고 빛깔도 고와서 처음 보는 사람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만차닐 나무에 다가가 열매를 만집니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만차닐 나무의 열매는 강한 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원주민들이 적과 싸우기 위해서 독화살을 만들 때 이 열매의 즙을 화살촉에 발랐을 만큼 맹독을 품고 있습니다. 열매를 만지기만 해도 독이 오르고 즙이 피부에 닿으면 물집과 통증이 생깁니다. 행여 열매를 먹기라도 하면 극심한 고통과 함께 마침내 죽게 됩니다.
외형이 아름답다고 속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쾌락을 좇아 인간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바르고 행복한 삶이라고 우리를 현혹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좀먹고 마침내 파멸로 인도합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복부제라는 사람이 선부라는 고을의 원님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이웃 제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복부제는 즉시 성문을 닫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때마침 추수기여서 성문 밖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원님을 찾아가서 “기껏 농사지어 적병들에게 곡식을 넘겨줄 바에야 적이 도착하기 전에 모두 나가서 아무 밭에서나 자기 힘대로 거두어들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복부제는 그들의 청을 뿌리치고 성문을 닫게 했습니다.
복부제를 존경하던 백성들은 융통성이 없는 결정을 했다며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제나라 군사들이 곡식을 다 가져가자 백성들의 원성은 더욱더 높아졌습니다. 결국 복부제는 적을 이롭게 했다는 죄목으로 왕의 심문을 받게 됩니다.
“일 년 지은 곡식을 적병들에게 빼앗긴 것은 아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급하고 손쉽다고 해서 남의 곡식을 마구 베어다 먹는 버릇이 생기면 그것은 10년이 가도 고칠 수 없는 일입니다”
복부제의 말을 들은 왕은 멀리 내다볼 줄 아는 그의 식견에 탄복합니다.
마르키스 드 라파예트 라는 프랑스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의 방대한 농장주였습니다.
어느 해, 유럽에 마름병이 휩쓸고 가서 농사를 망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습니다.
그러나 라파예트의 농장은 당시 휩쓸고 간 마름병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에 작물들은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친구 중 한 사람이 라파예트에게 “지금 밀농사가 흉년이 들어 밀 값이 매우 뛰었네. 지금이 밀을 팔 때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라파예트는 “아니, 지금은 밀을 팔 때가 아니라 나누어 줄 때야”라고 말하고,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월남전에 참가했던 미군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상태를 조사하는 가운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고국으로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해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은 후유증이 심했으나 도리어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은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이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좀 더 조사해 보니, 배를 타고 오면서 서로 이야기하며 마음을 풀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우리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큰 위로를 받습니다. 기댈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아닌지 모릅니다.
미국 남 감리교 대학의 제임스 페네 베이커 교수는 사람이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을 때는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그것은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즉, 고백은 죄책감과 같은 마음의 짐과 해로운 스트레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는 것입니다.
자살이나 자동차 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사람들을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아픔과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말해 온 사람들은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슬픔을 털어놓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질병으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와 위로를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소련이 공산화 되면서 소련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 되어 버릴 만큼 국가의 박해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비밀리에 모여 조심스럽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몇 십 명의 사람이 지하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총을 든 군인들이 문을 박차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사형 당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이제부터 너희를 처형하겠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니 이제라도 예수를 믿지 않을 사람은 즉시 이 자리를 떠나라”
그러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황급히 달아났습니다.
군인들은 계속해서 위협적으로 소리 질렀습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어서 나와”
공포에 질린 채 죽음을 각오한 몇 명의 성도만이 기도를 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군인들이 문에 쇠고랑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우리는 혹시 이 안에 교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가짜 교인이 있을까봐 일부러 이렇게 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도망갔고 들킬 염려가 없으니 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우리도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제야 성도들은 안심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한 여인이 자녀를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임신했지만 결국 유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하의 아내가 유산을 한 후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죽음을 생각한다는 소식이 여왕에게 들려졌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그녀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여왕의 방문 이후 여인은 놀랍게 회복되어 삶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도대체 여왕이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해주었냐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여왕이 제 손을 잡고 ‘당신의 마음이 어떤지 내가 알아요’라고 한 말이 전부입니다.
여인은 여왕에게도 유산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고난이 자기 혼자만의 고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 고난의 아픔은 물러가고 위로와 소망의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엘카미노 크리크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트래비스 셀린카는 뇌종양 때문에 7주간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트래비스는 방사선 치료 이후 건강을 회복해 학교에 다니게 됐지만, 치료 중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은 다시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다시 학교에 등교하던 날 ‘모두 내 머리를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걱정하며 교실에 들어섰을 때, 트래비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트래비스가 빠진 머리 때문에 부끄러워 할까봐 같은 반 남학생 15명이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고 그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트래비스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기 위한 친구들의 진심어린 배려였습니다.
모든 것의 정답은 바로 기도입니다.
짐 에글리가 기독교 리더들을 대상으로 일을 얼마나 준비하고 얼마나 기도하는 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조사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일을 준비하는 데 보내는 시간을 2시간 사용하는 수 백 명의 리더들과 5분을 준비하는 수 백 명의 리더들을 비교하였을 때 이 두 집단 사이에서는 많은 리더들이 생산되는 것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리더들이 그들의 모임을 위해서 기도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사이에서는 매우 큰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리더들이 일을 준비하는 것보다 일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큰 차이를 가져온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 요한복음 15:4-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토스카니니라는 사람은 원래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의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지니 연주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연주하지 않기 위해서 악보를 외워버렸습니다. 그 이후 이것이 습관화되어졌고 오케스트라 특성상 조화를 이뤄야겠기에 다른 파트 악보까지 외우게 됩니다. 한번은 연주를 막 앞두고 지휘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부득이 대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연주를 지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논 끝에 악보를 다 외우고 있는 토스카니니에게 지휘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오케스트라 지휘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것보다 모든 것을 더 잘 소화하여 연주를 마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토스카니니가 세계적인 명지휘자로 발돋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그는 말했습니다.
“나의 나쁜 시력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나를 명지휘자로 만들어 주었다.”
* 시편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인형을 무척 좋아하는 한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의 집에 이모가 놀러 왔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인형을 내보이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모가 조카에게 물었습니다.
“이 인형들 중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은 어떤 거야?”
“이모,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을 말하면 절대로 웃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그래, 약속할께”
그러자 아이는 여러 인형들 중에 팔이 떨어지고, 다리가 하나 너덜너덜 거리고, 옷은 다 헤어진 인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너는 왜 이 인형을 제일 좋아하는 거야?”
“이 인형은 제가 좋아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해 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